스마트폰과 전자책, 웹툰이 대세가 된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도 종이책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 특히 종이책의 마지막 공정인 제책업은 사양길로 몰리고 있지만, POD(주문형 출판)와 맞춤 제본을 축으로 새로운 활로를 열어가고 있다.
국내 제책업계는 출판물 수요 감소와 노동력 고령화, 설비 노후화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왔다. 수작업 위주의 저효율 공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저가 수주 경쟁에 시달렸고, 독일과 일본 등 인쇄 강국이 자동화와 친환경 기술을 도입하면서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러나 POD와 맞춤 제본은 소량 다품종 생산에 최적화된 해법으로 주목받는다. POD는 재고 부담 없이 주문만큼 인쇄·제본하는 방식으로 독립 출판 작가나 교육기관에 적합하다. 맞춤 제본은 팬북, 사진집, 졸업 앨범, 기업 보고서 등 다양한 수요를 흡수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교보문고의 절판 도서 POD 복간 서비스, 퍼블리·부크크 같은 자비출판 플랫폼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문가들은 제책산업이 살아남으려면 지역 기반 POD 거점을 확대하고 1인 출판 통합 플랫폼 개발, 디지털 제책 기술을 갖춘 인력 양성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동화 설비와 스마트 팩토리 도입, 특수 제본과 후가공 기술 개발도 필수적이다.
일본 토판인쇄와 다이닛폰인쇄는 유럽 업체 인수와 스타트업 협업을 통해 제책의 디지털화를 가속하고 있고, 미국 아마존은 KDP 플랫폼으로 1인 POD 시장을 제도권에 편입시켰다. 북유럽 국가는 친환경 소재와 수작업 기술을 결합해 고부가가치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수천 년간 인류의 지식과 감성을 묶어온 책은 여전히 강력한 콘텐츠 매체다. 제책업은 쇠퇴가 아니라 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으며, POD와 맞춤 제본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이 이어진다면 종이를 묶는 일은 사람을 잇는 산업으로 다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