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쇄업계가 겪는 가장 뚜렷한 변화 중 하나는 창업 1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는 시점에도 불구하고 2세 경영자의 등장이 드물다는 점이다. 다른 산업에서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가업승계가 인쇄업에서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업황의 문제라기보다 산업 구조 변화와 세대 인식 전환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인쇄 산업은 디지털 전환의 충격을 가장 먼저 맞은 업종 중 하나다. 오프셋을 기반으로 한 전통 인쇄시장은 출판과 광고 수요가 줄고,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꾸준히 축소돼왔다. 이런 환경에서 젊은 세대에게 인쇄업은 성장 가능성이 낮은 ‘사양산업’으로 각인됐다. 부모 세대가 고생하며 일군 사업을 이어받기보다는, IT·금융·문화콘텐츠 같은 미래 산업에서 자신의 경로를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후계 세대의 가치관이다. 해외 유학과 다양한 경력을 쌓은 2세들은 ‘한 우물 경영’보다 개인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중시한다. 이들에게 인쇄업은 더 이상 ‘아름다운 가업’이 아니라 과거 산업화 시대의 산물로 비친다.
제도적 장치의 부재도 문제다. 일본이나 유럽은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통해 세대 간 승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장인정신을 사회적으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상속세 부담이 크고, 인쇄업이 구조조정 업종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아 지원이 미약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후계자에게 기업을 물려주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인쇄업은 과거 출판·교육·언론을 떠받친 핵심 산업이었다. 그러나 2세 경영자의 부재는 산업의 역사와 맥을 단절시키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접목해 업계 재도약을 시도할 계승자가 없다면, 인쇄업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날 위험이 크다. 후계 세대가 인쇄업을 ‘아름다운 가업’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장기적 비전 제시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