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H-1B 전문직 취업비자 수수료를 기존 1,000달러에서 10만 달러로 100배 인상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국 IT 업계와 실리콘밸리에 큰 충격이 일고 있다. 최근 1년간 신규 발급 건수가 14만여 건임을 감안하면, 기업들이 매년 약 140억 달러(20조 원) 이상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실리콘밸리의 핵심 경쟁력은 우수한 해외 인재 유입에 있다. 인도, 중국, 한국 등에서 유학 후 현지 기업에 취업하는 엔지니어와 데이터 과학자가 생태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해외 인재 채용 비용이 급증하면서, 스타트업과 중소 테크기업은 사실상 글로벌 인재 영입의 문이 닫힐 위기에 놓였다. 반면, 자본력이 풍부한 빅테크 기업들은 비용을 감당하면서도 경쟁사를 압도할 기회를 얻는다. ‘인재 전쟁’이 본격화되는 국면이다.
한국과 일본에도 파급효과는 적지 않다. 우선 한국의 IT 인재들이 미국 진출 대신 국내 스타트업이나 일본 기업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은 ‘코스피5000 시대’와 AI 슈퍼사이클로 국내 투자환경이 개선되고 있고, 일본은 디지털 전환(DX) 가속화를 위해 외국인 엔지니어 유치에 적극적이다. 미국에서 막힌 길이 동아시아의 기회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번 조치는 미국 내 창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위축시키고 혁신 속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실리콘밸리가 그간 유지해온 개방성과 다문화 기반의 혁신 모델이 흔들릴 경우, 글로벌 스타트업 지형은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유럽은 EU 공동 비자 제도를 활용해 인재를 흡수하려 하고, 싱가포르·두바이도 글로벌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의 극단적 보호주의가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 일부 일자리를 방어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혁신의 둔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이번 사태는 ‘위기이자 기회’다. 미국의 문이 좁아질수록, 인재는 새로운 시장을 찾는다. 한국과 일본의 스타트업이 이 흐름을 선제적으로 포착해 글로벌 인재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면, 실리콘밸리의 독점 구도를 일부 흔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