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힌 뒤 일본 정치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10월 4일 총재 선거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을 신임 총재로 선출했다. 국회 인준 절차가 마무리되면 그는 일본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로 공식 취임하게 된다.
이시바 전 총리는 잇따른 지방선거 패배와 지지율 하락으로 당내외 압박을 받으며 지난 9월 초 사임을 공식화했다. 자민당은 즉시 후임 선출 절차에 착수했고, 결선 투표에서 다카이치가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을 제치며 최종 승리를 거뒀다. 국회 총리 지명 선거는 오는 10월 15일 임시국회에서 열릴 예정이며,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도 자민당 중심의 연정 지지가 우세해 큰 이변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카이치는 1993년 중의원에 첫 입성한 이후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가까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경제안보, 방위정책, 헌법 개정 등 보수 의제에서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왔으며, 이번 총재 선출 과정에서도 ‘아베노믹스 계승’과 ‘안보 자립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집권 후에는 고물가·임금 정체 문제 대응, 사회보장 제도 개혁, 반도체·AI 등 전략산업 육성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외교 노선에서는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한국과의 관계에서는 기존 보수 노선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다카이치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각자의 신앙의 자유”를 강조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취임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어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참석 등 굵직한 외교 일정이 예정돼 있다.
이번 총재 교체는 자민당이 1년 만에 지도부를 다시 바꾼 것으로, 장기 집권 구조의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여소야대 상황 속에서 다카이치가 연정을 확대하고 국정 운영의 안정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최대 과제로 꼽힌다.
일본 정치사에서 첫 여성 총리의 탄생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일본 사회의 성평등 담론과 정치문화 전반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보수층 결집을 통한 단기적 정치 안정이 장기 개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